아침에 출근을 하는 데 차도에서 사람들이 가두 행진을 한다. 마치 노동자들이 집회 끝나고서 행진을 하며 시위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풍경이 출근길에 펼쳐졌다.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피켓을 들고 전단을 나눠주면서 도심 한 복판을 당당하게 지나간다.
나눠주는 전단을 보니 투표용지처럼생겼다. 꽤 많은 정당에서 출마를 했는 지 칸이 무척 많다. 각각의 칸에는 글씨가 쓰여있는 것이 아니고 그림이 그려져있다. 익숙해 보이는 낫과 곡괭이 그림도 보이고 동그라미도 보인다. 특이하게도 우산이 그려져 있는 가 하면 나비가 그려져있는 정당도 있다. 네팔이 문맹률이 높다보니 정당 이름이나 출마자 이름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고 상징하는 그림을 보고 투표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총선이 다가오면서 도심 이곳 저곳에서 선거운동이 전개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이상할 수 있지만 후보와 운동원들이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만난 어느 네팔인은 네팔엔 정당이 130개가 넘는다고 한다. 실제로 정당에 대한 진입장벽이 없어서 수십개의 정당이 총선에 참여하고 있고 1%만 득표해도 원내진출이 가능하다.
군소정당이 많다보니 정당간 연정을 통해서 다수당이 되어 총리를 배출하고 집권하는 것이 그동안의 총선의 모습이었다. 1당과 2, 3당이 어떻게 연정을 하느냐에 따라서 정권이 바뀌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경계를 두지 않고 손을 잡기도 한다는 점이다. 의석수 상위 3당 중에 2개의 당이 좌파(공산당)이고 우파 정당은 한 개이지만 어느당이 서로 손을 잡을지 알수 없다.
대표적인 2당은 마오당과 맑스 레닌당이다. 왕정을 무너뜨린 세력들이기도 하고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연정을 통해 오랜기간 정권을 잡고 있다. 제 3당도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당으로 어찌보면 네팔이 좌파가 정치 세력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특이하게 통일교 교리를 이념으로 삼는 네팔 가정당이 내각에 진출하기도 했고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네팔 노동자 농민당도 있다.
현장 적응 교육을 받으며 머물던 카투만두 랄릿푸르 지역과 며칠 전 이사를 해온 카투만두 동쪽의 박타푸르 지역의 정치 성향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박타푸르 지역에선 선거때마다 네팔 노동자 농민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번 총선 전날과 당일 점심때 투표장 근처에 산책하는 척 일부러 가보았는 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고 뜨거웠다.
총선날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뉴스나 한국 외교부 쪽에서 외국인인 우리들에게 안전에 대해 많은 주의와 경각심을 주었다.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이곳은 총선에 연휴가 실시되고 지역구를 떠나 살던 사람들이 명절때 처럼 시골로 내려간다. 정부에서는 7개 주 경계를 넘어서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한다. 국내선 항공기의 운항을 통제할 정도로 엄중하게 통제한다.
군경이 모두 동원되어 선거를 관리한다.
총선 당일날에는 도심 전체에 오토바이를 비롯한 차량운행이 금지된다. 어길 시에는 오토바이와 차량이 압수된다. 구급차가 아닌 차량을 운행하려면 흰색 비표를 받아 장착하거나 비행기표를 지참하고 국제선 공항에 가는 길만 허용이 된다.
실제로 총선 당일 밖을 나가보니 카투만두에서 박타푸르를 지나가는 하이웨이에 차량이 거의 없었다. 술집도 문을 열지 못하게 하여 보우다에 사는 내 여동생도 장사를 못했다.
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아서 차량이 없으면 삼삼오오 걸어서 투표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투표장앞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투표를 마친 사람들도 그 주위를 떠나지 않고 서서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손을 잡거나 어깨위에 무등을 태우고 늦으막히 투표장으로 가는 사람들도 보았다.
먹고 살기 힘들면 정치 의식이나 참여율이 낮을 것 같은데 네팔은 그렇지 않다.
투표장 앞에선 오랫만에 고향에 온 친구들을 만나서 무척 반가와하는 이들이 좋아 보였다.
어제 총선은 끝났지만 대부분의 직장과 학교는 오늘까지도 휴무이다. 정부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휴일을 도입해서 운용을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내일 내가 근무할 기관(직장)에 첫 출근인데 총선 얘기가 많이 들릴지 기대가 된다.
정치에 진심인 나라!
우리 집주인 아들은 우파를 찍으러 시골가서 아직도 안오고 있다. 자기는 공산당이 무척 싫단다. 연고가 없는 이 지역에 집을 사서 들어온 타관사람이다 보니 네와리족 중심의 박타푸르에서 많이 답답한 듯 하다. 더구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네팔 노동자 농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지역에서 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쩐지 이 동네 가게에서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북쪽인가 남쪽인가를 묻고서는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냥 내 추측이긴 하지만 남쪽이라고 대답을 했을 때 시내쪽하고는 반응이 많이 달랐다. 대화중에 김정은이라는 이름도 여러번 들었다. 지금 총선을 지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자세한 내용은 전혀 알수 없지만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네팔어가 어설퍼서 크게 말실수는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제 총선도 끝나서 가게나 식당들도 문을 열었느니 직장에 출근해서 일도 하고 밋있는 것도 사먹고 싶다. 너무 휴일이 많으니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게 더 힘이 든다. 벌써 6분의 1의 파견 근무기간이 지나갔다. 두 번의 큰 축제와 총선이 시간을 순식간에 지워 버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