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협력 봉사단 국내 교육을 수료하고 돌아오니 바로 추석 연휴가 이어졌다. 먼 길가기전에 인사차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부어 드리고 왔다.
일 년간의 해외체류를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엔 출발 준비하기 전에 정리가 더 어려운 과정이었다. 비록 내 소유는 아니지만 집이있고, 여행을 다녀와도 돌아올 집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집을 정리하고 가려하니 쉽지가 않았다. 살지도 않으면서 월세를 일 년을 내기도 그렇고 짐 두자고 전세를 급하게 얻거나 집을 사는 것도 이상해서 모두 정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들을 버릴 것은 버리기 시작했다. 가전, 이불, 옷, 책, 부엌살림들이 버려졌다. 버리는 방법도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우선 20년은 족히 사용한 대우 공기방울 세탁기와 그만큼은 아니어도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대우 전자레인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무료 가정수거 서비스를 예약 신청했다. 이사날짜에 가깝게 해서 마지막 세탁까지 하고 내보냈다. 마지막까지 빨래는 깨끗하게 되었다. 세탁기가 떠나고 난 후에도 내의와 양말, 수건 등 빨래 꺼리가 또 나왔다. 이 것은 동전 세탁방을 이용해서 출국전에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 외 소형가전들은 주민센터 소형가전 수거함에 개미가 먹이 나르듯 하나씩 날라다 놓았다. 노란 전기밥솥, 에어프라이기, 라면 포트, 선풍기, 모니터 등이 그 대상이었다.
해외거주 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가는 길에 대형폐기물 스티커, 불연성 쓰레기 마대자루, 가연성 쓰레기 빨간봉투를 사와서 손에 잡히는 대로 분류하면서 넣어서 배출을 했다. 스티커를 붙인 것은 5단서랍장, 직접 주문제작한 손 때 가득한 좌식 컴퓨터 책상(2000년 제작), 접이식 밥상, 스텐레스 사다리 선반, 빨래건조대 등이다. 상태가 그나마 좋은 뒤에 2개는 스티커는 사서 올려놓고 붙이지는 않고 다음 사람이 결정하도록 하였다.
마대 2개에는 타지않는 그릇들이 주로 담겼다. 타는 것들도 60리터 봉투 4장이나 나왔다.
옷은 최대한 의류 수거함을 이용하였고, 의류 수거함에서 거부하는 베게, 솜이불 등은 빨간 봉투 행이다.
당근 마켓도 적극 활용을 하여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은 무료 나눔을 하였다. 의외로 냉장고는 적은 액수지만 돈을 받고 팔았다. 무료 나눔으로 싱크대선반, 냄비 3종세트, 솥 3종세트, 요구르트제조기, 다리미 등을 나눔하였는 데 이것도 시간 맞춰 내주기가 쉽지는 않았다. 디지털 체중계는 1만원이라도 받을까 하였는 데 결국 불발이 되었다.
그 렇게 하고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은 정리하여 보관을 두 곳에 나누어 택배로 또는 친구 승용차로 옮겨 맡겨두었다.
정리의 끝 출국 2일전에 방을 빼고 보증금을 받는 과정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집주인의 강짜때문에 오전에 이사를 못하고 오후에 이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오래살았던 셋집이지만 끝에 아주 확실히 정을 떼고 시원한 맘으로 짐을 들고 나설 수 있었다.
이제 내 손엔 캐리어 하나와 베낭 한 개만이 남았다. 수십년의 삶이 압축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정작 해외에 가져가겠다고 남긴 내 소유물 중에도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과도하게 구입한 약품들도 그렇고 수십개의 1인용 곰탕 파우치들도 렇고 코이카에서 준 일부 물품들도 그렇다. 짐을 싸고나니 무게나 부피를 너무 줄였는 지 가방하나는 공간이 너무 많아서 가져가지 않으려 했던 오리털 다운 자켓을 추가로 넣었다.
자 이제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아직 비자도 안 나온 상태지만 베낭을 진 어깨에 힘을 넣어 보자.